생각없는 복종에 관한 두가지 좋은 글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행위

가끔 제 아이는 제게 “세상에서 제일 나쁜 짓이 무엇이냐”고 물어봐요. 그럴 때에 제가 그에게 답해요. 생각하지도 않고 어떤 권위나 권력에 복종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하고 나쁜 짓이라고. 그런데 아쉽게도 이는 거의 모든 사회들이 가장 요구하고 가장 격려하는 일이기도 해요.

반항은 가끔 거칠 수도 있고, 그 이념적 내용은 지나치는 등 여러 모로 문제성을 내포할 수 있지만, 가장 거칠고 도식주의적인 반항자보다 가장 착하고 순한 복종자는 훨씬 더 위험합니다. 대중들의 복종이야말로 인류가 경험한 최악의 범죄를 나은 모태입니다. …

내 안의 악마, 매가 매를 부른다

독일 나치스 친위대 장교출신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은 나치시대 유대인 학살의 실무 책임자였다지요. 독일 패망 후 아르헨티나에 숨어살던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비밀경찰에게 발각되어 재판장에 섰을 때 세계 언론은 이 ‘악마’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몇 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피도 눈물도 없이 끔찍할 거라 예상했던 그 ‘악마’는 어이없게도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답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히틀러를 수뇌로 한 나치 지도부의 ‘유대인 절멸’을 명령 받은 친위대의 중간관리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치당의 강령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고, 히틀러의 <나의 투쟁>도 읽어본 일이 없었답니다. 피고석에서 ‘그때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그는 지도부의 명령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저 자신에게 떨어진 상부의 명령을 아주 충실히 이행할 뿐이었지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생각의 부재, 성찰의 부재는 이같이 가공할만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겁니다.

 

생각없는 복종에 관한 두가지 좋은 글

“아파트로 중산층 되던 시절 지났다”

“아파트로 중산층 되던 시절 지났다”

Well analysed. Many points are agreed.

단적으로 앞으로 갈수록 내집마련은 어려워질 것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들은 해방 후 처음으로 자기 힘으로 내집마련이 불가능한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이 세대에 속한 사회 구성원들이 앞으로 어떻게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들을 고민해야 한다. 임대료나 월세는 정신없이 뛰고 있는데, 이런 문제들은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다뤄지지 않고 있다.

1940년대에 태어난 소위 ‘강남 1세대’들이 자산증식 해나가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표준적인 모델이 있다. 그 때는 자연스레 평형대를 늘려갈 수 있었다. 당시 강남에 아파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지어진 게 아니라, 10년에 걸쳐서 지어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처음 강남에 진입해서 평당 가격이 30만원대인 아파트를 샀다고 치자. 1년 정도 지나면 가격이 두 배로 오른다. 그런데 옆 동네에서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평형대는 넓은데, 평당 분양가는 여전히 30만원대다. 그러면 이전 아파트를 팔고 넓은 아파트로 이사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도 인용을 했지만, 강남 중산층이 등장하는 박완서 선생의 7,80년대 소설을 보면 그 과정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또 다른 예로 분당, 일산 평촌 등 1기 신도시의 경우, (개발) 당시 평당 분양가가 180~200만원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1인당 소득이 6000~7000달러 하던 시절 이야기다. 지금 가격을 생각하면 (당시 입주한 사람들은) 엄청난 사회적인 혜택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앞에서 아파트를 일컬어 ‘선택과 배제의 분배 시스템’이라고 얘기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불 수준인데, 최근의 2기 신도시 같은 경우 평당 분양가가 1400만원대에 육박하고, 서울 시내 같은 경우는 2000만원대를 가볍게 넘어간다. 거칠게 비교해 소득 수준은 세 배 늘었는데, 아파트 분양가는 열 배 가까이 오른 거다. 아파트 첫 구입 예정자들이라고 할만한 30대 중반 이하 세대가 그들의 낮은 임금 수준으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가격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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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헌법을 읽자

[고종석 칼럼] 헌법을 읽자

대한민국 시민이라면 대한민국 헌법을 한 번이라도 읽어봐야 마땅하다. 그것은 자신의 헌법적 권리와 의무를 알려줄 뿐 아니라, 대한민국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정치적 성찰을 북돋운다. 헌법 조문들 일부는 추상성이 높다. 예컨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1조1항)라는 조문만 해도 그렇다. 이 조문의 뜻을 오롯이 깨달으려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대한 앎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 한편, 난삽한 법률 용어들이 나풀거리는 하위 규범들에 견주어, 헌법 조문 대부분은 외려 일상어에 더 가깝다. 헌법을 정식으로 공부하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헌법학 전문서적을 읽을 필요는 없다. 전문(前文)과 본문 130조, 부칙 6조로 이뤄진 대한민국 헌법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

대한민국 헌법을 지키는 것은 대통령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시민 모두의 의무다. 현실이 그 헌법을 파괴하고 있을 때, 거리에서 학교에서 노동현장에서 투표소에서 그 현실을 바로잡으려 애쓰는 것 역시 국민의 의무다. 그러려면 우선 헌법을 읽자. 한 시간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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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도 화를 내는가

달라이라마도 화를 내는가

필자의 견해는 이렇다. 화를 내는가 안 내는 가에 있다고. 즉 화가 날 상황에서 그분들이 어떻게 대처하는가, 즉 어떤 화가 날 원인과 조건 속에서도 화를 내지 않고 태연 하는가에 있다고 본다.

아무리 험하고 혼탁한 세상살이일지라도 마음속에 얼마나 성냄을 담고 사는지를, 그리고 참고 살아갈 수 있는 이웃에 대한 배려의 마음, 관용의 마음을 저울질 해봐야 한다. 우리 인간의 행복은 바로 마음이 편할 때 온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행복의 열쇠는 마음의 힘, 내적 평정심 그리고 꾸준함 같은 덕목 속에 있다고 확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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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경기고-서울법대 출신이었다면…

노무현 대통령, 경기고-서울법대 출신이었다면…

이 글은 김형태 변호사의 다른 글에 비하면 글의 흐름이 분명하지 않고 다분히 감상적이지만 다음 부분은 무척 공감이 간다.

일찍이 싯다르타는 네가지 질문에 침묵으로 답하셨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사람들이 그 답을 알 수도 없다. 설령 답을 안다 해도 당장 눈앞에 닥친 인간의 괴로움을 해결해 주지 못하니 아무 쓸모가 없다.

그래도 나는 그분 가르침 뒤에 계속 진전을 이룬 인류의 성과들을 공부하면서 이 네가지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 나섰다.

첫째 물음, 이 세계는 영원한가. 당신께선 침묵하셨지만 현대물리학의 성과에 따르면 이 우주의 역사는 137억년이고 수많은 우주가 났다가 사라진다. 세계는 영원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둘째, 이 세계는 공간적으로 끝이 있는가. 지금의 우주는 맨 처음 한 점에서 시작했지만 모든 별들이 서로가 서로에 대해 멀어져가서 현재 크기는 빛이 10억년 동안 가는 거리다. 그럼 이 우주 바깥은? 없다. 그래도 계속 한 방향으로 가면 도로 제자리이니 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도무지 우리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가로와 세로만 있는 2차원에 사는 존재는 높이까지 있는 3차원 같은 구부러진 지구 표면을 죽었다 깨도 이해하지 못하는 거와 같다. 2차원 존재에게 지구 표면은 가도 가도 그 끝도 밖도 없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셋째, 신체와 영혼, 마음은 같은가. 뇌과학에 의하면 물질인 신체를 떠나 별도의 영혼, 마음이란 없다. 하지만 물질인 뇌신경 다발의 상호작용으로, 물질을 넘어서는 생각, 마음이라는 게 창발적으로 나타났다. 신체와 마음은 같지도 다르지도 않다.

뇌에는 자아를 밖의 세계와 구별하여 인식하게 하는 영역이 있다. 고도의 정신집중을 통해 외부 감각 정보들이 유입되는 게 끊어지면 생리적으로 자아와 외부가 구별이 안 되어서 마치 초월상태에 들어간 것처럼 느끼게 된다. 각자 믿는 종교에 따라 신이나 브라만과의 합일, 또는 내가 사라지고 청정한 한 마음을 보았다고 표현하지만, 이건 그저 물질인 뇌의 특정한 상태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면 도로 원점.

넷째,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하는가. 붓다의 수백년 뒤 제자 나가르주나에 따르면 생사윤회와 열반해탈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어디 별도의 여래라는 변하지 않는 실체가 있어서, 깨달음을 통해 비로소 어디 별도의 극락 같은 열반의 장소로 가는 게 결코 아니다. 났다가 사라졌다가, 수많은 조건들이 모이고 흩어져 생사(生死)라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연기의 실상, 그래서 세상 만물이, 사건이 하나로 그물처럼 이어져 있는 상태가 바로 열반이니.

지금은 여기까지가 나의 공부 결과다. 이 공부는 앞으로도 계속 변해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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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황금시대’라는 환상 / 오길영

[크리틱] ‘황금시대’라는 환상 / 오길영

그러나 각 시대는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예술만을 갖는 법이다. 그들은 그들의 ‘황금시대’를, 우리는 우리의 ‘나쁜 시대’를 산다. 영화의 엔딩에서 길이 환멸스러운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의 길을 경쾌하게 걸어가듯이, 우리도 주어진 문학의 행로를 뚜벅뚜벅 걸어갈 뿐이다. 그러니 다시 “나쁜 현실에서 출발하라”(브레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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